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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명 스님이 그 길로 경허 선사를 찾아가니, 선사께서 간파하시고 물음을 던지셨습니다. "목전(目前)에 고명(孤明)한 한 물건이 무엇인고?" "저만 알지 못할 뿐만 아니라 일천성인(一千聖人)도 알지 못합니다." 그러자 경허 선사께서 다시 물으셨습니다. "어떠한 것이 혜명(慧明)인가?" 이에 혜명 스님은 동쪽에서 걸어 서쪽에 가 섰다가, 다시 서쪽에서 걸어 동쪽으로 가 섰습니다. 경허 선사께서는 여기에서, "옳고, 옳다." 하시며 혜명 스님을 인가(印可)하셨습니다. 그 후 1902년, 경허 선사께서는 혜명 스님에게 혜월(慧月)이라는 법호(法號)와 전법게(傳法偈)를 내리셨습니다. 付慧月慧明 (부혜월혜명) ............ 혜월혜명에게 부치노라 了知一切法 (요지일체법) ............ 일체법 깨달아 알면 自性無所有 (자성무소유) ............ 자성에는 있는 바가 없는 것 如是解法性 (여시해법성) ............ 이같이 법성을 깨쳐 알면 卽見盧舍那 (즉견노사나) ............ 곧 노사나 부처님을 보리라 依世諦倒提唱 (의세제도제창) .... 세상법에 의지해서 그릇 제창하여 無文印靑山脚 (무문인청산각) .... 문자 없는 도장에 청산을 새겼으며 一關以相塗糊 (일관이상도호) .... 고정된 진리의 상에 풀을 발라 버림이로다 혜월 선사께서는 24세 때 깨달음을 얻으신 후, 27년 동안 덕숭산에 주(住)하시다가 51세 이후로는 남방의 제선방(諸禪房)을 두루 유력(遊歷)하시면서 납자를 제접(提接)하셨습니다. 당시에 선사의 법기틀 쓰심은 "신(申) 혜월 미투리 방망이에 남방 선지식이 다 빙소와해(氷消瓦解)되었다."는 유행어가 생겼을 만큼 독특했습니다. 혜월 선사께서 부산 선암사(仙岩寺)에서 주석하고 계시던 중 1923년에, 운봉 성수 스님이 깨달은 바를 점검받고자 선사를 참방(參訪)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