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스님   Introdu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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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성의 일념으로 불타다
처음 머무르셨던 곳은 태백산에 위치한 동암(東庵)이라는 한 작은 암자였습니다. 모든 반연(攀緣)을 끊고 단신(單身)으로 각고정진(刻苦精進) 해보겠다는 각오로 그 빈 암자를 택하여 자잘한 피감자로 하루 세 끼를 때우면서 정진생활을 하셨습니다.

그곳에서 두 달을 지내셨는데 마침 그 밑에 있는 큰 절 각화사의 주지를 맡게 된 도반스님이 와서 보고는 하루 세 끼 끼니 꺼리조차 마련되어 있지 않은 어려운 생활을 걱정하여 함께 내려가자고 자꾸만 청하는 바람에 다시 바랑을 짊어지고 선산 도리사(桃李寺)로 옮겨가셨습니다. 도리사에서 일고여덟 분의 수좌스님들과 여법(如法)히 정진하시면서 동안거 한 철을 나시게 되었습니다.

스님께서는 견성(見性)해야겠다는 일념에 마음이 달아, 오로지 정진에만 힘을 쏟으셨습니다. 저녁 9시에 방선(放禪)하면 대중들이 다 잠들기를 기다리셨다가 살며시 혼자 일어나 두어 시간 더 정진하시곤 하였습니다.

그렇게 빈틈없는 수행생활을 하신지 두 달이 조금 지나서였습니다. 참선 도중에 반짝 떠오르는 조그만 지견(知見)을 가지고서 '알았다'는 잘못된 확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참구하던 것을 다 놓아버리고는 해제일만 기다리셨는데 해제하면 가서 점검을 받아야겠다는 생각뿐이었던 것입니다.
향곡 선사와의 운명적 만남
그러던 중에 석우 선사께서 열반(涅槃)에 드셨다는 부고가 날아와서 동화사로 가 다비(茶毘)를 치르셨습니다. 그 후 경남 월내(月內) 묘관음사(妙觀音寺)에 주석하시고 계시던 향곡(香谷) 선사를 찾아갔습니다. 향곡 선사는 대뜸,
"일러도 삼십방(三十棒)이요 이르지 못해도 삼십방이니, 어떻게 하려느냐?"
하셨습니다. 스님께서 말을 못하고 우물쭈물하시자 향곡 선사께서 다시 물으셨습니다.
"남전(南泉) 선사의 '참묘(斬猫) 법문'에 조주(趙州) 선사께서 신발을 머리에 이고 나가신 것에 대해서 한마디 일러보아라."
스님께서는 그 물음에도 답을 하지 못하셨습니다. '알았다'고 자신만만해 있었는데 그만 여지없이 방망이를 맞으셨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당시에는 스님께서도 선지식(善知識)에 대한 신(信)이 정립되어 있지 않았던 때라 자신의 생각을 쉽게 놓아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제방(諸方)을 행각(行脚)하시면서 당시 선지식으로 이름이 나있던 고승(高僧)들을 거의 모두 참방(參訪) 해보시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선지식은 아니라고 하시지만, 또 어느 선지식은 긍정하는 듯이 대하셨던 것입니다. 그때 모두 한결같이 불긍(不肯)했었더라면 직하(直下)에 '알았다'는 망념(妄念)을 놓아버리시고 다시 참학인(參學人)의 자세로 돌아가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했던 탓에 '너도 장부요, 나도 장부다.' 하는 잘못된 인식이 박혀 2년여 세월을 어정쩡하게 허비해 버리셨습니다.

그러다가 26세 때 오대산 상원사에서 동안거(冬安居) 정진을 하시던 어느 날 햇볕이 따스하게 비치는 마루 끝에 앉아 자신을 반조(返照)해보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고인(古人)들과 같이 당당하여 낱낱의 법문을 확연명백하게 아는가? 누가와서 묻는다고 하더라도 의기당당(意氣堂堂)하고 전광석화(電光石火)와 같이 답을 할 수 있는 그러한 혜안(慧眼)이 열렸는가?' 하고 스스로 물어보게 되었습니다. 대답은 여지없이 부정이었습니다.

'도둑을 잘못알아 자식으로 삼고 돌덩어리를 금으로 삼는다면 결국 내 손해가 아니겠는가?' 하며 거짓에 사로잡혀 허송세월 해왔던 자신을 반성하시게 되었습니다. 여기에서 모든 잘못된 소견(所見)을 놓아버리고 백지로 돌아가서 다시 공부를 시작하리라는 결심이 서셨습니다. 그리고 이전과 같은 오류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반드시 눈밝은 선지식을 의지하여 공부해야만 한다는 인식을 분명히 갖게 되었습니다.

선사께서 제방 선지식들을 참방(參訪)하시던 과정에서 향곡 선사만은 제방의 다른 선지식들이 쓰지 못하는 '언하(言下)에 흑백을 분명히 가려내는 법(法)'을 쓰시던 것을 보셨기 때문에 향곡 선사에게 의지하여 스승으로 삼고 공부를 하시기로 마음을 정하고 해제하자마자 향곡 선사 회상을 찾아가시게 되었습니다.
신명을 다 바쳐서 해보겠습니다
선사께 예배드리며,
"이 일을 마칠 때까지 스님을 의지해서 공부하려고 왔습니다."
하시니 향곡 선사께서 물으셨습니다.
"이 심오하고 광대무변(廣大無邊)한 대도(大道)를 네가 어찌 해결할 수 있겠느냐?"
"신명(身命)을 다 바쳐서 해보겠습니다."
라고 스님께서 대답하니 향곡 선사께서 새로 '향엄상수화' 화두를 주셨습니다.

※ 향엄상수화(香嚴上樹話) : 어떤 사람이 아주 높은 나무 위에서 입으로 나무가지를 물고 손으로 가지를 잡거나 발로 가지를 밟지도 않고 매달려 있을 때, 나무 밑에서 어떤 사람이 '조사서래의(祖師西來意)'를 물었다. 답하지 않으면 묻는 이의 뜻에 어긋나고, 만약 대답한다면 수십 길 낭떠러지에 떨어져서 자기 목숨을 잃게 될 것이다. 이러한 때를 당하여 어찌해야겠느냐?

이 화두를 들고 2년여 동안 신고(辛苦)하셨습니다. 결제와 해제를 상관하지 않고 일체 산문출입(山門出入)을 하지 않으시면서 화두 참구 외에는 그 어떠한 것도 용납하지 않고 궁구(窮究)하셨던 것입니다.